한국 역사에서 난세에 해당하는 시기, 즉 가장 먹고 살기 어려운 불경기 때마다 그 처방전으로 등장한 믿음이 미륵신앙이다. 나말여초의 전환기에 민중들을 결집시켰던 견훤과 궁예가 미륵을 자처했고 여말선초의 이성계도 미륵신봉자였다. 왕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미륵불에게 정성스럽게 빌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미륵신앙이 신라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백제지역, 그것도 전라도 지역에서 융성했다는 점이다.
한국 미륵신앙의 개창조 진표율사(718 ~ ?)는 망해버린 백제의 유민으로 태어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고행끝에 마침내 도를 통한 장소가 부안 변산의 불사의방(不思義房)이다. 불사의방으로부터 1천 2백년의 시공을 관통하여 현재까지 흘러와 우리의 몸을 적시고 있는 것이다. 진표율가가 죽기를 각오하고 불사의방에 온 배경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었다. 하나는 깨달음에 대한 종교적인 열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식민지 백성이 품었던 '한' 이었다. 진표가 태어난 710년대는 나라를 잃은 슬픔이 아직 가시지 않던 시점이다. 그가 태어나고 수도한 김제 만경지역과 변산지역은 나당 연합군에 대항했던 백제의 저항군들이 끝까지 항전하다가 몰살당한 한 맺힌 유적지라는 사실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나라를 잃은 백제의 한을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한 20대의 청년 진표는 자기가 속해 있는 동시대의 역사적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진표는 불사의방에서 엄청난 고행을 하였다. 매일 꺼칠꺼칠한 돌바닥에다 수천번의 전을 해서 팔굼치와 무릎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고행과 참회를 계속했다. 그런데도 불보살의 감응이 없자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이 때 지장보살이 나타나 떨어지는 진표의 몸을 절벽에서 받아올렸다고 한다. 지장보살을 만난 뒤에도 정진을 계속하자 이번에는 미륵보살이 나타나 진표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면서 계시와 권능을 준다.
이후로 진표는 자애로운 미륵불의 화신이 되어 백제 유민들의 한을 어루만진다. 당시 의지할 곳 없이 방황하던 백제 사람들에게 진표는 구세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미륵신앙이 유달리 체제 변혁적인 성격을 띠게 된 배경에는 이 같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 조용헌 나는 산으로 간다 47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