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안안교당 청년4단 배성해(문형) 변의품 32장 선진열전 항산 이호춘
[선진열전] 항산 이호춘 / 변의품 32장
원기 99년 1월 25일
청년 4단 배성해
반갑습니다. 청년 4단 배성해입니다.
오늘 함께 배울 주제는 항산 이호춘 선진님과 변의품 32장입니다.
1. 항산 이호춘 선진님 (1902~1966)
항산(恒山) 이호춘(李昊春) 선진님의 본명은 이재천(李載天)입니다. 1902년에 태어나시고 1966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선진님은 전남 영광군 묘량면 신천리 신흥마을 출신입니다. 신흥마을은 함평 이씨 집성촌이며, 일산 이재철 선진님 이후 재가와 전무출신이 많이 나왔습니다. (일산 이재철, 도산 이동안, 응산 이완철, 고산 이운권 등)
일산 이재철 선진님이 팔촌동생인 도산 이동안 선진님을 인도하였고, 원기 6년(1921) 이동안 선진님이 사촌동생인 이호춘 선진님을 인도하였습니다. 사촌형을 따라 대종사님을 뵌 이호춘 선진님은 그 자리에서 감복하여 입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호춘 선진님은 원기 12년(1927) 2월에 출가하였고, 농업부장 등을 맡았습니다.
이호춘 선진님은 가계가 어려운데다 12세에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서당에 한 철만 다니고 배우지 못한 일이 평생의 한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총기가 있어 한번 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았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 들었던 고사를 잘 인용했다고 합니다. 이호춘 선진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박학한 선비로 알았고, 주위에서는 그를 ‘육조대사’라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호춘 선진님은 삼산 김기천 선진님과 은부자의를 맺었습니다. 선진님이 총부에서 <취지규약>을 익힐 때 모르는 한자가 태반이어서 배우기가 어려웠습니다. 삼산님께 청하여 경전 중의 한자들을 뽑아 천자문 같은 책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삼산 김기천 선진님이 만든 것이 《철자집》이라고 합니다.
원기 13년(1928) 삼산 김기천 선진님이 견성인가를 받자, 이호춘 선진님은 이에 분발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너무 성급했던지, 원기 18년(1933) 32세 되던 해 건강을 상하게 됩니다. 대종사님의 명을 받들어 환가하는 대신, 동생인 온산 이재문 (穩山 李載文) 선진님을 전무출신케 하였습니다. 이후 신흥지부 발전에 협력하였고, 이흥사(驪興寺)라는 옛날 절의 터를 매입하여 과수원(이흥과원)을 개설하고, 이후 신흥지부 고문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1962년(원기47) 회갑 후 병이 점점 깊어졌지만, 새벽좌선을 거르는 때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1966년(원기51) 가을부터 열반의 시기가 임박하였음을 알고, 가산에 대한 일을 미리 처결한 뒤, ‘자손만대 신심불변, 전무출신 속출, 의인 도인 많이 나라’는 유훈을 썼습니다. 그해 12월 5일 열반에 들었습니다. 장남 이공전(凡山), 장녀 이현조(白陀圓)가 전무출신하였습니다.
<가계> 항산 이호춘
― [부인] 재타원(載陀圓) 김장신갑(金長信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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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범산(凡山) 이공전(李空田) | [딸] 백타원 이현조(李現照) |
― [동생] 온산(穩山) 이재문(李載文)
― [조카] 유타원(宥陀圓) 이덕조(李德照) |
2. 변의품 32장
(1)법어 봉독
이제 변의품 3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대종경》 변의품 32장 |
김 기천이 여쭙기를 [선지자들이 말씀하신 후천 개벽(後天開闢)의 순서를 날이 새는 것에 비유한다면 수운 선생의 행적은 세상이 깊이 잠든 가운데 첫 새벽의 소식을 먼저 알리신 것이요, 증산 선생의 행적은 그 다음 소식을 알리신 것이요, 대종사께서는 날이 차차 밝으매 그 일을 시작하신 것이라 하오면 어떠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럴 듯하니라.]
이 호춘(李昊春)이 다시 여쭙기를 [그 일을 또한 일년 농사에 비유한다면 수운 선생은 해동이 되니 농사 지을 준비를 하라 하신 것이요, 증산 선생은 농력(農曆)의 절후를 일러 주신 것이요, 대종사께서는 직접으로 농사법을 지도하신 것이라 하오면 어떠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또한 그럴 듯하니라.]
송 도성이 다시 여쭙기를 [그 분들은 그만한 신인이온데 그 제자들로 인하와 세인의 논평이 한결같지 않사오니, 그 분들이 뒷 세상에 어떻게 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일이 인증할 만한 이가 인증하면 그대로 되나니, 우리가 오늘에 이 말을 한 것도 우리 법이 드러나면 그 분들이 드러나는 것이며, 또는 그 분들은 미래 도인들을 많이 도왔으니 그 뒷 도인들은 먼젓 도인들을 많이 추존하리라.] |
위 법문은 《대종경 선외록》에 자세하게 다시 나옵니다.
《대종경 선외록》 교리편 12장 |
삼산(三山)이 여쭈었다. "선인들이 말씀하신 후천 개벽의 순서를 계명이야분(鷄鳴而夜分)하고 견페이인귀(犬吠而人歸)라는 전래 가사에 따라 날이 새는 것에 비유하옵고, 최 선생의 행적은 만뢰가 깊이 잠든 자시(子時)에 첫 새벽을 알리는 금계(金鷄)의 행적이요, 강 선생의 행적은 아직도 자는 사람이 많은 축시(丑時)에 일찍 깬 사람이 기척을 미리 알리는 영오(靈獒)의 행적이요, 대종사의 행적은 날이 겨우 밝은 인시(寅時)에 활동을 개시한 주인(主人)의 행적이라 하오면 어떠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근가(近可)하니라."
이호춘(李昊春)이 다시 여쭈었다. "그 일을 또한 일년 농사에 비유하옵고 최 선생은 해동이 되었으니 농사 지을 준비를 하라 하신 것같고, 강 선생은 어느 때는 못자리 하고 어느 때는 이앙하느니라 하사 농력 절후를 일러 주신 것 같고, 대종사께서는 못자리는 이렇게 하고 이앙은 이렇게 하며 김매고 거두기는 또한 이렇게 하라 하사 직접으로 농사법을 가르쳐 주신 것과 같다 하오면 어떠 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또한 근가하니라."
송도성(宋道性)이 다시 여쭈었다. "그 분들은 그만한 신인이온데 그 제자들로 인하와 세인의 논평이 한결같지 않사오니, 그 분들이 뒷 세상에 어떻게 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일이 인증할 만한 이가 인증하면 그대로 되나니, 우리가 오늘에 이 말을 한 것도 우리 법이 드러나면 그 분들이 드러나는 것이며, 또는 그 분들은 미래 도인들을 많이 도왔으니 그 뒷 도인들은 먼젓 도인들을 많이 추존하리라." |
후천개벽은 새로운 세계가 열림을 의미합니다. 어두웠던 과거의 세계(선천 先天)가 지나고, 새로운 세계(후천 後天)가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후천개벽을 최초로 알린 사람이,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선생입니다. 교의품 32장에서 수운은 “후천개벽의 첫 소식을 알린 사람”, “해동이 되었으니 이제 농사지을 준비를 하라고 말한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은 1824년 경북 경주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수운은 10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7세에 아버지마저 여의고, 19세에는 모든 세간과 물려받은 서적이 불타버리는 등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수운은 21세에 홀연히 팔도를 떠돌기 시작합니다. 13세에 결혼하여 처자식이 있던 참이었습니다. 수운은 떠돌이 생활을 하며, 신음에 찬 민중의 생활을 경험하였으며, 기존의 종교로는 세상을 구제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수운은 세상을 구할 새로운 도법을 찾으리라 결심하여, 31세(1854년)에 처가인 울산에 내려와 독서와 사색에 전념합니다.
32세 때(1855년) 도인으로부터 신비한 책(《을묘천서》)을 받는 경험을 합니다. 수운은 책을 읽는 한편, 기도생활을 시작합니다. 마침내 1860년(37세), 몸과 마음이 떨리며 신비한 기운에 휩싸인 채, 한울님의 소리를 듣는 신비한 체험을 시작합니다. 한울님의 소리를 듣는 체험은 몇 달간 계속됩니다. 그러던 중 수운은 한울님의 소리가 다른 곳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의 마음에서 나는 소리임을 깨닫습니다. 각자가 천주를 모신다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입니다. 수운은 1년간 교법을 정리하여 이를 ‘동학(東學)’이라 하였으며, 1861년(38세)부터 포교를 시작합니다. ‘동학’의 교세는 금방 확산되었고, 이에 위협을 느낀 관청은 1864년, 수운이 41세 때,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수운을 참형합니다.
시천주와 더불어, 동학의 핵심사상 중 하나가 개벽사상입니다. 수운은 “개벽 후 오 만년”, “다시 개벽”이라는 용어를 통해, 혼란의 시대가 지나고 태평성세가 시작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수운의 개벽사상은 고통에 찬 당시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동학이 교세를 급속도로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3)증산 강일순의 생애와 그의 후천개벽사상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선생은 1871년 전북 고부(정읍)에서 태어났습니다. 증산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업을 일찍 포기해야만 했고, 나무꾼과 머슴노릇을 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증산이 24세 때(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증산은 동학의 무력투쟁방식에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동학의 실패를 예언하고, 사람들에게 동학혁명에 가담치 않을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그의 예언대로, 동학혁명은 처참히 실패했습니다. 농민군은 일본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합니다.
증산은 종교서적들을 읽기 시작합니다. 27세 때(1897년) 전국 유람을 시작하여, 30세(1900년)에 고향에 돌아옵니다. 31세(1901년) 때 전주 대원사에서 수도를 하던 중,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스스로가 상제(上帝)라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이를 성도(成道)라 합니다.
증산은 이후 9년간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것을 합니다. “천지에 관한 공적인 일”이라는 뜻입니다. 증산이 생각했을 때 민중이 당시 고통 받았던 이유는, 천지가 혼란하기 때문이고 원한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증산은 상제로서, 혼란스러운 천지질서를 바로잡고 원한을 푸는 일을 하는데, 이것이 천지공사입니다. 그 형태는 대개, 글씨를 쓴 뒤 불사르는 식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전봉준 장군이 원한을 품고 죽었기 때문에, 증산이 그를 소환하여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불교에 각종 폐단이 많았던 것은 석가모니의 잘못이므로 석가모니를 소환하여 꾸짖고 파직시킨 후, 불교를 새로이 다스릴 사람으로 진묵대사를 임명합니다.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나요? 증산이 살았던 당시에도, 지금도, 증산을 광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종사님 생각은 달랐습니다.
《대종경》 변의품 31장 |
한 제자 남의 시비를 함부로 논평하는 습관이 있어 하루는 증산(甑山) 선생을 광인이라 이르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어찌 선인(先人)들의 평을 함부로 하리요. 그 제자들의 허물을 보고 그 스승까지 논죄함은 옳지 못하며, 또는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을 모르는지라 저의 주견이 투철하게 열리지 못한 사람은 함부로 남의 평을 못하나니라.]
그 제자 여쭙기를 [그러하오면, 그 분이 어떠한 분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증산 선생은 곧 드물게 있는 선지자요 신인이라, 앞으로 우리 회상이 세상에 드러난 뒤에는 수운 선생과 함께 길이 받들고 기념하게 되리라.] |
여하간, 증산은 수시로 천지공사를 하면서, 비를 내리거나 병을 고치는 등의 기적을 보이며 김형렬 · 차경석 등의 제자를 받아들입니다. 제자들이 늘어나자, 의병을 모집한다는 혐의를 받아, 제자들과 함께 고부 경무청에 압송당하여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이때 증산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자, 그마저 있던 제자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1909년 6월 증산은 남은 제자들을 불러, 자신이 천지공사를 마쳤음을 선언했습니다. 증산은 이후 며칠간 여러 가지 질병을 대신 앓고는, 수제자 김형렬에게 몸을 기댄 채 사망합니다. 증산이 39세 때의 일입니다.
후천개벽은 증산에게도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증산의 후천개벽사상은 동학 및 원불교의 사상과는 구별됩니다.
첫째, 증산이 후천개벽의 주재자로 이해됩니다. 계절이 순환하듯 선천이 지나고 후천이 자연스레 오는 것이 아니라, 증산이 천지공사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입니다. 증산교에서 증산은 메시아(구세주)입니다.
둘째, 동학과 원불교에서는 개벽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되는 반면, 증산교에서는 후천개벽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이해됩니다. 증산이 후천을 바로 열지 않고 사람들이 각자의 원한을 풀 시간을 남겨놓았다고 여겨집니다. 증산교도들은 남은 시간 동안 각자의 원한을 풀고, 도를 닦아야합니다. 증산이 다시 와서 후천개벽을 하는 그때, 도를 닦은 사람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소멸할 것입니다. 증산교에서 후천개벽은 가을바람으로 비유됩니다. 가을바람이 불 때, 쭉쩡이 열매는 떨어지고, 실한 열매는 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후천개벽의 시점에 원한이 가득한 사람은 소멸하고, 원한을 풀고 도를 닦은 사람은 살아남습니다.
이러한 증산교의 해석은 자칫 잘못하면, 말세론적으로 이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일부 증산교인들은 ‘개벽이 임박했다’고 주장합니다. ‘개벽이 임박’했는데, 직업이 무슨 소용이고 돈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개벽이 임박하다고 믿는 증산교인들은 재산을 교단에 바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가 결국 고통에 빠지고 맙니다. 민중의 고통을 없애려했던 증산의 의도와는 반대가 된 셈입니다.
이처럼 증산의 사상은 원불교와는 다르며, 잘못 해석될 가능성도 큽니다. 그래서 저는, 대종사께서 어찌하여 증산을 선지자로 보는지 아직 이해되지 않습니다. 다만, 원한을 풀어야한다는 증산의 가르침과 상생의 새 세계를 열려는 증산의 시도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4)소태산 대종사의 후천개벽사상
1)시운(時運)에 의한 개벽
대종사의 개벽사상은 동학과 유사합니다. 개벽은 자연히 오는 것입니다. 밤이 지나고 새로이 해가 떠오르듯, 묵었던 선천이 끝나고 새로운 후천이 열리는 것입니다. 대산종사님의 해설을 보겠습니다.
《대산종사법어》 교리편 12장 |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 「대종사께서는 선후천의 기점을 갑자년 정월 초하루로 잡으셨나니 이때가 바로 천지개벽의 비롯이라, 대종사께서는 갑자 이전은 선천이요 음 시대이고 갑자 이후는 후천이요 양 시대라 하셨나니, 과거 음 시대에는 신의 세계가 인간의 세계를 지배했으나 돌아오는 양 시대에는 인간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니라. 이에 따라 앞으로 돌아오는 세상에서는 과거의 모든 윤리와 도덕과 철학은 점차 빛을 잃게 될 것이요, 종교도 새 시대 새 세상에 맞는 종교라야 환영을 받게 될 것이며, 개체불 숭배에서 전체불 숭배로, 차별 시대에서 평등 시대로 차차 변화하게 되나니라. 또한 세상 모든 기운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게 될 것이며, 강자가 먼저 받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먼저 받게 될 것이며, 개인주의 · 가정주의 · 국가주의에 머무르던 것이 차차 대아주의로 옮겨지게 되나니, 이때가 되면 반드시 새로운 법주가 나와 새 법을 다시 짜야 하므로 대종사께서는 이를 예견하시고 일체 법을 제정하실 때 원만 평등한 일원주의로 법을 내 주셨나니라.」 |
2)개벽은 조건일 뿐
그러나 개벽이 이미 이루어졌다하여, 낙원세계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봄이 되어 밭에 얼음이 녹았다고 하여, 곡식이 바로 자라지 않습니다. 얼음이 녹은 그 밭에다가 씨를 뿌리고 성실히 경작해야만 곡식이 자라고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개벽은 ‘조건이 열렸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개벽의 세계를 활용하여 복과 혜를 얻는 일은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원불교는 ‘사실적 종교’입니다. ‘사실적 도덕의 훈련’입니다.
《대종경》 불지품 13장 |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천지에 아무리 무궁한 이치가 있고 위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그 도를 보아다가 쓰지 아니하면 천지는 한 빈 껍질에 불과할 것이어늘 사람이 그 도를 보아다가 각자의 도구같이 쓰게 되므로 사람은 천지의 주인이요 만물의 영장이라 하나니라. 사람이 천지의 할 일을 다 못하고 천지가 또한 사람의 할 일을 다 못 한다 할지라도 천지는 사리간에 사람에게 이용되므로 천조의 대소 유무를 원만히 깨달아서 천도를 뜻대로 잡아 쓰는 불보살들은 곧 삼계의 대권을 행사함이니, 미래에는 천권(天權)보다 인권(人權)을 더 존중할 것이며, 불보살들의 크신 권능을 만인이 다 같이 숭배하리라.] |
3)정신개벽의 과제
대종사께서는 개벽시대를 활용하기 위해선, 각자의 정신개벽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종경》 서품 4장 |
대종사 당시의 시국을 살펴보시사 그 지도 강령을 표어로써 정하시기를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하시니라. |
대종사께서는 정신개벽을 하기 위한 방법, 즉 훈련법 또한 제시해주셨습니다. 교의품 32장에서 대종사를 “날이 밝았기에 일을 시작한 사람”, “농사법을 지도해 주는 사람”으로 표현되는 이유입니다.
물질문명의 발전 속도는 실로 엄청납니다. 올해는 갑오년입니다. 갑오동학농민운동 · 갑오개혁이 일어났을 때가 1894년입니다. 전봉준 선생이 낫 들고 관청을 습격했던 것이, 불과 120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의 갑오년에서 1954년 갑오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그때부터 올해 2014년 갑오년 사이에 또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비극적인 일들도 많았습니다. 정신문명의 발달속도가 물질문명의 발달속도에 미치지 못했던 탓입니다. 전쟁은 항상 있어왔지만, 20세기 전의 전쟁과 20세기 후의 전쟁은 다릅니다. 20세기 후의 전쟁은 한 민족을, 한 나라를 절멸시킬 수 있습니다. 독일의 나치정부가 유태인들을 가스로 학살하였습니다.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앞으로의 전쟁은 더 합니다. 이제는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대종사께서는 과학을 통한 물질문명의 발달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도학을 통해 정신문명의 발달이 이루어져야, 과학을 올바르게 이용할 수 있으리라 보셨습니다. 도학이 주가 되어, 과학을 선용해야만 낙원세계가 이루어지리라 보았습니다. 대종사께서 원불교를 여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정전》 〈제1총서편〉 제1장 개교의동기 |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 고해(波瀾苦海)가 없으리요. 그러므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樂園)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 |
우리 개인도 그렇습니다. 고등학생일 때, 저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휴대폰이 완전히 보급되기 전이었습니다. 휴대폰이 없었던 탓에, 오롯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도서관에 앉아서도, 시시때때로 스마트폰을 확인합니다. 쉴 때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느라 제대로 쉬지를 못합니다. 잠들기 전에도 그렇습니다. 잠깐만 가지고 논다는 게, 몇 시간 씩 스마트폰을 갖고 놀기 일쑤입니다. 일찍 잠들지 못해서, 다음 날 일과에 지장을 주곤 합니다.
스마트폰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스마트폰은 잘 쓰면 참 좋은 물건입니다. 사람들과 연락하기도 쉽고, 교통수단이나 길을 찾는데도 유용합니다. 적당히 게임해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그만두어야할 때 그만두지 못하는 탓입니다. 즉, 정신의 자주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삼학공부를 통해 정신의 힘을 길러야할 것입니다. 정신의 힘을 통해 물질의 힘을 활용할 때 영육쌍전이 됩니다. 모두가 영육쌍전하는 그 때가 낙원세계입니다.
《대종경 선외록》 〈14.주세불지장〉 7절 |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세상에 낙원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외형의 낙원이요, 둘은 내면의 낙원이다. 외형의 낙원은 과학이 발달되는 머리에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요, 내면의 낙원은 도학이 발달되어 사람사람이 마음 낙으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요순 시대에는 내면의 낙원은 되었으나 외형의 낙원이 없었고, 현세에는 외형의 낙원은 되었으나 내면의 낙원이 적으니, 우리는 내외 겸전한 좋은 낙원을 건설하기 위하여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한 것이다.” |
제가 좋아라하는 법문 하나만 더 읽겠습니다.
《대종경》 서품 4장 |
최 도화(崔道華) 여쭙기를 [이 세상에 미륵불(彌勒佛)의 출세와 용화회상(龍華會上)의 건설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사오니 미륵불은 어떠한 부처님이시며 용화회상은 어떠한 회상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들어나는 것이요, 용화 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이니, 곧 처처 불상(處處佛像) 사사 불공(事事佛供)의 대의가 널리 행하여지는 것이니라.]
장 적조 여쭙기를 [그러하오면, 어느 때나 그러한 세계가 돌아오겠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지금 차차 되어지고 있나니라.]
정 세월(鄭世月)이 여쭙기를 [그 중에도 첫 주인이 있지 않겠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하나하나 먼저 깨치는 사람이 주인이 되나니라.] |
개벽시대의 좋은 시기를 만난 우리입니다. 정신개벽을 통해 낙원세계의 첫 주인이 되고, 다른 이들을 또한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로 인도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강연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