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평화

남원 수곡장학회와 사학학원 사회환원 교육자

고세천 2016. 9. 29. 15:45

녹슨 자전거의 혼

-수곡장학회(修谷獎學會)를 생각하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서호련

 

 

남원에 수곡장학회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지난번 남원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장학금수여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장학증서 수여식 때 학생대표가 앞으로 나가 장학회의 세 가지 덕목을 낭독하였다.

하나, 양지권학(養志勸學)-면학정신

둘, 시인포덕(施仁布德)-봉사정신

셋, 극기복례(克己復禮)-인의정신 함양

이 가르침이 그날따라 새롭게 느껴졌다. 안내장에 적힌 장학목표엔 ‘백년대계의 집념으로-남원 출신 영재 발굴-영세가정 우수학생에 대한 면학지원’ 이라고 되어 있었다. 소박하지만 가슴 뭉클한 내용이었다. 이날 36명(고교생18, 대학생18)에게 5천 400만 원이 지급되었고, 장학금 누계실적은 551명에 5억 2천 400만 원에 이르렀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녹슨 자전거의 혼이 깃든 장학회’ 란 어느 분의 축사가 내 가슴에 와 닿았다. 필시 장학회 설립자가 평생 녹슨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했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진한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이 조그만 남원고을에서 크게 이름난 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거부도 아닌 분이 어떻게 10년 전에 장학회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양병식 씨가 초기 2001년에 출연한 액수는 현금 10억 원과 5억 원 상당의 부동산이었다. 그 3년 뒤 그분은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타계하셨고, 남긴 유산 2억 원과 부동산 10억 원을 3남 5녀가 상속받지 아니하고 장학회에 모두 기부하였다고 한다. 소학교만 졸업한 그분은 10대 때부터 가난하여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장사를 했고, 탁주공장 운영 등으로 돈을 모으자 평소 못 배운 자신처럼 고생하는 학생이 없어야겠다는 일념으로 피땀과도 같은 재산을 내놓아 장학재단을 세웠다고 한다.

평소 그분의 삶의 지표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날마다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운 일 없이 모두가 이루어진다)‘라고 한다. 오늘의 후학들이 꼭 가슴에 새겨야할 가르침이다. 자녀들이 유산을 포기하고 장학회에 모두 기증한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수곡(修谷)이란 이름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부인의 택호(宅號)라고 한다. 이러한 돈을 모으기까지는 부인의 고생도 많았을 터이지만, 장학회의 이름에 부인에 대한 연민의 정이 서려있어 눈물겨웠다.

얼마 전에 나는 미국부자들과 한국부자들의 기부형태를 비교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미국사람들은 확실히 돈 버는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게 아니라 사회에 기부하는 것을 더 큰 기쁨으로 여긴다. 우리나라 부자들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 한인사회에 600만 불($)을 기부해 왔던 홍명기 드라코트 회장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 재산도 미국의 많은 부자들처럼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 이미 내 자녀들에게도 내 재산을 기대하지 말고 내가 살아온 길을 따르라고 당부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보다 자녀들에게 상속하려는 정서가 강하다. 자녀들이 못살고 못 먹는 상황에서는 의당 그럴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다 높은 교육을 받고 전문직을 가져 부족할 것 없는 삶을 누리는 집안에서도 그러한 정서가 강하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들을 사랑하는 정이 미국사람들보다 더 강해서일까?

남원에도 큰 재벌은 없지만 그래도 자수성가하여 부를 이루고 재산을 쾌척하여 사학을 일으킨 분들이 있다. 사매면에 용북중학교(춘강학원)를 세우신 유광현 전 국회의원님, 남원성원고등학교와 남원여상(제일고)을 세우신 양승권 양승귀 형제, 남원상고(정보국악고)와 한남여고(서진여고))를 세우신 이남근 님이 그런 분들이다. 자랑스러운 남원의 스승들이다. 그분들 역시 분명히 뜻을 세우신 동기와 일화가 있었을 터이다. 이러한 빛들이 흐려지지 아니하고 앞으로도 계속 남원을 비추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로운 빛들이 솟아나 침체된 남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으면 하는 바람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새사도교회 한국주교 / 남원지역 세무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