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평전을 읽고
김형수 작가의 구성으로 펴낸 소태산평전(少太山評傳)을 일독했다. 구한말인 1891년에 태어나 나라를 빼앗긴1916년 깨달음을 얻어 원불교를 창시한 후 일제 강점기의 가장 험난한 시기인 1943년에 열반에 든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의 일생은 수운(최제우 1824-1864) 해월(최시형 1827-1898) 증산(강증산 1871-1909)의 삶과 결코 다르지 않다.
개벽의 일성을 일깨우고 떠난 1세대 선각자 수운과 그 불꽃을 꺼치지 않고 삼천리 들판을 태운 해월, 좌절과 실의에 빠진 민중을 껴않아 해원상생의 살풀이 퍼포먼스를 보인 증산 그리고 3분 선각자의 토대와 뜻을 받들어 거대한 물질문명의 쓰나미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불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덕 회상을 펼치는 주촛돌을 놓기까지가 소태산의 생애였다.
소태산의 짧은 53년의 삶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첫째 한민족을 넘어섰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도덕의 부모국 정신의 지도국의 위상을 세워주었지만 한국만의 선택된 독립을 원치 않고 인류구원을 목적으로 했다. 지엽적인 독립국가를 넘어선 근원적인 낙원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개벽의 상두소리로 보고 인류구원을 위한 허공법계에 기도를 올리게 했다.
둘째 한국을 36년간 강제적으로 지배한 일본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의 역량이 좁음을 탓하며 새로운 질서운동을 주장하였다. 강자약자 진화의 요법이 그것이다. 사실 세상은 지배하는자와 지배당하는자의 구조로 되어있다. 조선시대를 보더라고 반상(班常), 남녀(男女), 적서(嫡庶), 노소(老少)의 차별이 도를 넘어서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비단 약소국과 강대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소태산은 문제의 근원을 심도있게 보고 지자본위 질서를 세우는 영원한 강자의 길을 제시했다.
셋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어서는 물질의 광란(狂亂)을 잠재울 대안을 제시하였다. 우주의 시계가 여름을 지나 가을 추수의 계절에 이르렀음이 정역사상이다. 소태산은 깨달음의 혜안과 선성들의 책을 통해 물질개벽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의 신앙 수행 기준점을 물질의 선용에 맞추었다. 물질이 개벽되는 것을 막을 수 없기에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지금 생산되는 곡식으로 인류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데 굶주림에 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욕심의 자재와 만족, 감사와 한 탯줄에서 나왔다는 동포포용,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는 주체적 노력이 새로운 수행의 덕목임을 알려주었다.
인류는 유기체인데 그 유형을 벗어나려 노력하는 게 인간의 욕심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지라도 거부하여 자연의 흐름에 함께하여 내가 자연(自然)이 되고 신(神)이 된다.
넷째 신비한 이적을 놓고 철저한 인도주의를 표방한 점이다. 사실 소태산에게도 많은 이적이 일어났지만 두가지 이유에서 금기시했다. 하나는 먹고사는데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교육의 기회가 적어 인지(人智)가 어두운 시대에는 불가피하게 기적을 방편삼아 인심을 올바른 데로 돌렸지만 지금은 과학기술이 그것을 대체하고 있고 학식이 많아져 속임의 융통이 통하지 않음이다. 정당한 노력과 생활이 아니면 물질문명에 끌려다닐 뿐더러 정신의 자주력을 상실해 주체적 삶을 가질수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일제(日帝)의 강점기 속에서 간섭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작용하였다. 허황된 이적에 기대어 신통묘술을 추구한다면 일상적인 생활에서 일탈 되고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에 근거한 삶을 벗어나게 된다. 제자들의 삶이 만에 하나 이런 모습으로 그려지면 교단조직 해체에 좋은 명분을 제공하기에 엄격하게 금지했다.
다섯째 수운 해월 증산과의 약속이행으로 인류구원의 씨앗을 보호하려는 비원(悲願)이 있었다. 소태산은 앞서 스러져간 수운과 해월 그리고 강증산의 아픔과 안타까움, 미완의 완성을 지켜봤던 쓰리림 그리고 반드시 인류구원의 책임을 다 하려는 조바심이 소태산 평전 곳곳의 행간속에서 나타난다. 원불교 100년에서 소태산이 함께한 햇수는 28년이다. 1/3이 못미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정점(頂點)을 통과한다. 일제지배가 자리잡는 1916년에 깨달아 해방 2년전인 1943년에 영원한 휴양을 떠났다. 2차대전 막바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시(戰時) 동원체제를 발동하여 협조하지 않는 조직은 해체하는 시국이었기에 온전한 활동을 펼칠 수 없는 최후의 시간이 온 것이다. 회상을 보호하기위해 수없이 힘든 위기를 근근이 넘겼지만 무지막지한 일제 군국주의 발악을 막기에는 역부족임을 인식한 소태산은 자신을 희생하기로 하였다. 예수의 대속(代贖)이 그랫듯이 소태산도 생명을 버림으로써 교단을 살렸다. 도탄에 빠진 창생을 제도할 반야용선(般若龍船)이 출항도 하기전에 침몰되어서는 안되기에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였다. 소태산이 보인 마지막 이적이었다. 여기까지가 소태산 평전의 내용이다.
소태산의 열반후 후계 종법사 정산(송규 1900-1962)은 제자들과 단합된 힘으로 광복을 맞이하고 민족분단의 동란도 이겨내며 교단체제를 갖추어 원불교를 열었다. 원불교는 민족종교이면서 새로운 불교로서 이 시대에 희망을 불러오고 있다. 원불교의 사회재건활동은 교화 교육 자선 3방면으로 펼쳐졌다.
·교화사업은 교법실천이다. 신앙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구원하고 수행을 통해 고품격의 명품인생을 즐긴다. 이것을 위해 전문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전무출신(專務出身)이라 한다. 하늘을 대행해서 선공후사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하늘나라 공무원이다. 교화사업을 펼치는 사업장을 교당(敎堂)이라 한다. 교당은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학교이다. 내가 짓고 내가 받는 이치를 가르치고 일원상의 진리라는 우주의식에 바탕해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는 이치를 활용 부처님같은 인격을 갖추는 법을 배운다.
· 교육사업은 학교법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원불교 산하에는 대학원, 대학교육을 담당하는 원광학원 등 3개법인. 중고등학교를 담당하는 원창학원 등 8개법인, 유치원, 어린이집을 담당하는 각 교구 재단법인이 있다. 그중 원광대학교가 원불교 교육기관을 대표한다.
· 자선사업은 복지사업기관을 총괄한다. 복지사업은 복지법인 삼동회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15개 복지법인이 담당하는데 생애주기별 노인, 장애인, 한부모, 다문화, 병원 등 맞춤형 사업장이 200여개이다.
교화사업은 농촌이 경제의 중심이었던 1980년대가 절정이었다. 교육사업은 1990년대 이후 초중고 교육기관이 줄줄이 자리를 자리잡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2000년에 이르러 정부의 위탁을 받는 복지사업기관이 확충되었다.
2016년을 넘어서면서 원불교 2세기를 맞이했다. 세상은 물질에 예속되는 종속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의 가치가 빛을 발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라 이름지어진 인공지능의 등장은 사람다움의 상실을 부추긴다. 경제적 이익을 앞세운 기업가들은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빅데이터를 모아 물질의 힘을 키우고 있다. 작금의 한국현실은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렸다. 아버지 세대엔 산업화, 우리세대는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이 있었지만 저출산 고령화를 대체하는 정신사류가 없다. 대학나온 젊은이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학교는 아이들이 없어 텅 비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를 대체할 대안으로 가족이민 유입을 생각해 본다. 베트남 젊은이 일천만명만 받아들이자. 베트남은 인구가 1억명에 육박하는데 75%가 전쟁후 세대여서 30대 라고 한다. 또한 한국의 젊은이 백만명을 생계형 일자리로 베트남에 취업시키는 양해각서를 추진하자. 단계를 거쳐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점진적으로 배우게 하여 문화충격을 줄이고 세대간 토론을 통해 외국인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소통을 하자. 한국의 농어촌을 비롯한 영세 제조업 사업장에 베트남 이주가족을 배정하고 베트남 주제 한국기업에도 한국의 젊은이들을 알선하자.
베트남은 한국을 배우려는 열정이 넘친다. 한류의 중심지가 이곳이다. 이들에게 선진문물을 경험하고 동북아시아에 진출하는 발판을 제공해 주자. 한국을 거점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 몽골을 상대로 일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주자. 경제 관세를 철폐하는 양해각서는 체결하면서 인구유입 양해각서는 못할것이 없지 않는가? 이주민 인구유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토론하기위한 공청회와 포럼을 학계를 중심으로 하고 국제 Ngo 단체와 연계하여 문화적 충격을 완충하는 인적교류와 교육, 직업훈련을 병행해 초입 입국자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베트남에 한국의 명예 행정구역을 정하고 한국에 명예 베트남 행정구역을 정해주자.
대한민국 베트남도 하노이시, 호치민시 등등의 행정구역이 있으면 친밀도 면에서 가깝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베트남 한국성도 탄포 서울, 탄포 부산을 정해주면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서 활동하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이제는 아시아로 가가야 살길이 열린다. 다행히 교통과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매체의 발달로 시간적 거리적 공간이 줄어들었다. 30년전인 1986년 지방에서 서울가려면 5시간 걸렸다. 지금 서울에서 호치민 가는 시간이 5시간으로 비슷하다.
버스는 한시간에 100㎞를 갔다면 비행기는 1,000㎞를 날아 간다. 그 옛날 산업화 역군으로 일했던 공돌이 공순이가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으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아시아가 한국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앞마당이 동남아이고 옆마당이 중국, 일본 뒷마당이 북한과 만주, 블라디보스톡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한반도 안에 갖혀 살았다. 20대 젊은이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이룬 경제부와 제도적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당당하게 주변국을 기웃거려야 한다. 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시도를 우리가 주체가 되어 시도했으면 한다.
이것이 작가 김형수가 소태산평전을 짓고 우리가 일독(一讀)하고 이어서 우리 모두 함께 소태산이 펼치고자 도덕세계와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를 건설함이 아닐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는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나가는 수 밖에 길이 없다. 아시아는 한국이 동반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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