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을 원한다면 증오심을 녹여라
. 원불교의 공부법중에 인격적으로 스승의 반열에 오른 사람을 바른스승 즉 정사(正師)라고 한다. 정사가 되려면 과한 욕심, 증오하는 마음, 눈가리고 아웅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불가에서는 탐, 진, 치심을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나뿐 마음으로 보고 멀리할것을 말하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이념을 세상 다스리는 제도로 활용했다. 유교는 있는 자리를 근본으로 했는지라 각종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 그래서 상하간 구별을 지었다. 남녀노소 반상적서의 엄격한 구별은 계급으로 굳어져 신분제를 굳어지게 했고 지역적인 차별 역시 몹시 심했다. 조선시대 개성 이북 사람들은 과거에 응시해 관리가 되기가 쉽지 않았고 조직적인 소외를 경험했는데 붕당 파벌의 정치적인 세대결에서 제외되는 정도를 넘어 극도의 모멸감을 가지고 있었다.
차별을 당한 평안도 북쪽 사람들은 마음에 한(恨)을 품었고 이 한이 남녀(男女) 반상(班常) 적서(嫡庶) 노소(老少)의 차별아픔과 더해져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을 가져왔다. 표면적으로는 미소 이념대결의 희생(犧牲) 이라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는 지역을 하나로 통합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질 못했다.
ᆞ효도는 자식이 그냥 부모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지식을 키울 때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 돌보기에 그것에 감화되어 부모를 섬기는 것이 효도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은 임금이 신하에게 수족(手足)을 잘라 도와줌으로 신하가 목숨을 바쳐 왕권을 보호한는 것이다. 그런데 몸소 실천이 없이 명령으로, 제도로, 법률로 강제이행을 강요하는 것이 지금의 제도이고 법이다.
ᆞ남북이 분단되었지만 지금도 왜 분단되었는지 북한이 어떤곳인지에 대한 관심이 없다. 학교와 언론에서라도 북한의 국토, 문화재, 날씨 등 정치적 민감한 사항을 제하고 정보를 공개하고 가르쳐야 함에도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심정적으로 우리는 남북 분단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ᆞ우리들의 무의식에는 아직도 2천년전 삼국시대의 국경이 있다. 이웃에 대한 배려랄지 이해가 부족하고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런 원인에는 10리(4km) 이내의 반경속에 한평생을 살아와서 더 이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유목(遊牧)이 아닌 정착 농경문화가 주된 삶의 양태가 되어서 이다. 아리랑의 노래가사에도 있듯이 10리가 우리들의 물리적 공간이었다. 4km를 벗어나면 풍속이 다르고 문화가 달랐다고 한다. 옆 동네지만 교류가 부족하다 보니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다고 한다.
ᆞ하지만 과거에는 교통이 단절되어 땅을딪는 도보로 이동해서 그랬다 치더라도 지금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로 가고 더욱이 인터넷은 시공을 넘어서는 시대임에도 남북이 가로 막혀 있는것은 북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적개심이 그 원인이라고 하겠다. 두려움과 적개심의 원인에는 침략을 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있다. 그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다독여 정서적으로 안정을 시켜야 한다. 한풀이가 다른게 아니다. 나의 아픔을 객관화시켜 치유해야 한다. 조선시대 차별적 요인이 현대로 와서 좌우이념으로 자리잡고 서로 상처를 주었다. 한번 상처를 입으면 무의식에 깊게 잠재되어 현실속에 투영된다. 이것이 막연한 미움, 증오, 적개심으로 나오는 것이다. 신분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물리적인 투쟁은 또다른 투쟁을 불러온다. 투쟁이 없을 순 없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화에도 있지만 비바람 보다는 뜨거운 햇빛에 의해 옷을 벗는것이기 때문이다.
ᆞ소태산 대종사(1891-1943)는 동남풍과 서북풍의 이야기를 자주 법설에 인용했다. 동남풍은 상생의 봄기운이어서 모두를 살리지만 서북풍은 숙살(肅殺)의 가을 기운으로 모두를 잠재운다. 서리가 한번 내리면 왠 만한 농작물은 냉해(冷害)를 입어 고사되는 이치이다. 종교가는 동남풍의 역할이고 정치가는 서북풍의 역할로서 수레의 양바퀴라고 비유했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하지만 함께 해야 한다는게 원불교의 지론이다.
ᆞ원불교 2대 종법사였던 정산 송규(1900-1962)는 남북이 분단된 원인으로 과거 조선 500년 반상의 차별에 따른 원한이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무형의 정신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니 꼭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여자 한 사람이 한을 품으면 여름에도 서리가 내리는데 집단적으로 한을 품는데 하늘인들 변고가 생기지 않겠는가? 따라서 남북이 다시 하나로 합치려면 북한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 치유와 적개심, 분노를 조절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놓아야 한다.
ᆞ소태산은 남편에 대한 진심(嗔心)으로 다음 생에선 남편과 만나기를 꺼리는 제자에게 이르길 참으로 남편과 인연을 짓지 않으려면 좋아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모두 놓고 무심(無心)으로 대하라 한다. 적절한 가르침이다. 우리가 북한을 무시하고 미워하는것은 좋아함의 왜곡된 표현이므로 이제는 북한에 대한 무심의 태도를 가지자.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인류애를 가지자. 그러다가 미운 마음이 적어지면 한 동포라는 가족애로 접근하자. 남도 도와주는데 하물며 가족을 멀리한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북한사람들은 자존심이 아주 강하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마지막 자존심은 건들이지 말고 예우해주고 대우해 주면 그들 몫은 충분히 한다. 북한 사람들은 의리가 있다. 같은 사회주의국가인 베트남 통일전쟁때 공군을 파견하고 베트남 젊은 유학생들을 받아주었다. 그 학생들이 지금 고급 간부가 되어 한국과 교류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미움에 대한 이해
미움은 사랑에 대한 반대 에너지 이다. 나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고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미운것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있다. 직접적으로 때리는 사람보다 간교한 말로 이간질하는 사람이 더욱 미운 이유가 그것이다.
한국인들은 정이 너무도 많다. 한 시간만 만나도 마음에 들면 간도 빼줄 사람들이다. 적당히 상황을 보면서 정을 주면 좋은데 너무 깊이 빠지면 상대가 부담을 느끼는데 정 조절이 안된다.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는다. 내가 주는 만큼 상대방도 주기를 바라는데 상대방은 눈치가 선수이어서 밀당의 고수이다. 한국인들은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대륙과 해양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북쪽 유목민족이 세력을 키워 중국에 들어가 세운 나라 즉 수, 당, 원, 청나라는 대륙의 라이벌 의식이 있어 반드시 한반도를 침략했다. 북쪽을 기반으로 한 여진, 거란도 고려를 침략했다. 중원이 기반인 송나라 명나라는 한반도를 넘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에 정착한 한민족은 한번도 이웃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고구려가 영토를 확장한것은 고조선의 영역을 찾고자 함이지 다른 민족에게 고통을 주고자 함은 아니었다.
· 유사이래 400여 차레 침략을 당한 한민족은 아리랑으로 대표되는 음악을 통해 아픔을 승화해 나갔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잘 드러냈다. 아픔에 대한 상처는 아리랑으로 대체되었다. 해양에서 들어온 산물은 쌀농사이다. 쌀과 더불어 들어온 문화가 미륵불과 용 숭배사상이다. 특히 미륵사상은 고통에 신음하는 민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백제 무왕은 미륵산에 미륵사를 세우고 왕권강화를 꽤하기도 했다. 승자의 문화라기 보다 패자의 문화를 대변했다. 백제의 패망은 미륵불을 본존으로 한 금산사가 세워진다. 미륵불이 새로운 백제의 부흥을 가져올 것으로 보여서 이다.
# 집단적 따돌림의 결과는 분단과 분열.
형제끼리 미워함이 굳어지면 남보다 못한 단절의 결과가 나타남.
북한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이해와 교류를 시작해야.
남을 미워하고 무시한 업보가 집단의식이 굳어져 천지기운을 분단으로 돌렸다.
이제는 이해하고 돌아봐야 할 때가 되었다.
· 미국의 공화당이 표류하며 유럽은 IS와 난민문제로 곤욕을 치르며 각종 테러로 몸살을 치고 있다. 무엇을 반증 하는가. 세상이 자꾸 깨어나고 있음이다. 강자 일변도로 나가면 안되고 함께 모두 잘 사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제국주의 시절의 구습을 못 버리고 힘없는 자들에 대한 지배를 고집하기에 약자들의 반감이 자극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ᆞ프랑스 리스지역 테러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서 가슴 아프다. 끔찍한 일이다.
ᆞ우리 한국인에게 사명을 주었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해봐서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알고있다. 약자들의 고통에 눈을 뜨고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힘이 있다. 물질이 어느 정도 채워졌으니 이 물질을 기반으로 안분하며 아시아의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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