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선도 집안에서 태어나 선도의 맥을 잇고 있는 정재승,, 그를 만나기 위해서 계룡산 상신리에 있는 거처를 찾았다. 상신리는 계룡산 사대 수도처 가운데 하나다. 계룡산의 동쪽에는 동학사(東鶴寺)가 있고 서쪽에는 갑사(甲寺), 남쪽에는 신원사(新元寺)가 있다. 북쪽은 상신리다. 상신리에는 절이 없다. 고려때까지 구룡사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조선조에 들어와서 폐사된 이후 절이 들어서지 않았다. 그 대신 상신리에는 선도의 도꾼들이 들어와 살았다. 4대 수도처 가운데 유일하게 북쪽만 절이 없는 상태다. 현재 도꾼은 별로 없고 도예가나 화가를 비롯한 예술가들, 대전에 연고를 두고 있는 사람들의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기와 올린 한옥이라면 주변 풍치와 어울리겠지만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들이 들어서니 어쩐지 어색하다. 아직 한옥 짓고 살만큼의 안목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상신리의 산세는 전형적인 보림터다. 청룡백호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어머니 뱃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아늑한 느낌이 든다. 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이상적인 풍수 조건을 따지면서 수구(水口)가 막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구는 좌청룡과 우백호의 사이를 말한다. 풍수에서는 수구가 벌어져 있으면 기운이 빠져 나간다고 본다. 수구가 열려 있으면 미치 압력밥솥의 김이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닫혀 있으면 압력이 높아진다. 따라서 수구는 청룡백호가 십자형으로 감싸고 있어야 좋다고 본다. 상신리의 수구는 잘 감싸여 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네댓 번을 겹겹이 감싸고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든다. 조선시대 계룡산의 상신리를 찾아왔던 도꾼들도 틀림없이 겸겹이 막힌 수구의 형세를 보며 필자처럼 감탄했을 것이다. 수백 년 전 옛사람의 판다과 나의 판단이 일치할 때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명제를 실감하곤 한다.
'유불선(유교, 불교, 선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군 할아버지가 선교의 시조.. (0) | 2011.09.11 |
---|---|
방외의 한가한 도인.. (0) | 2011.09.11 |
선교의 맥은 살아있다. - 조용헌 고수기행에서 인용 (0) | 2011.09.11 |
종교적 신념의 해체 (0) | 2011.08.15 |
20세기 가장 위대한 종교의 변화 (0) | 2011.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