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선(유교, 불교, 선도)

한국선도 수련의 대중화

고세천 2015. 11. 24. 12:54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일제시기 선도의 중심이 대종교였듯이 광복 이후 선도도 대종교 계열 인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상해임정에서 대종교계 인사들의 활약이 컸기에 광복후 새로 수립된 정부내에서도 대종교 계통 인사들의 비중이 적지 않았는데, 民政長官 安在鴻, 대한민국정부 초대부통령 李始榮, 국무경리 李範奭, 문교부장관 安浩相, 감찰위원장 鄭寅普, 審計院長 明濟世, 국방부장관 申性模 등을 위시하여 다수의 국회의원, 국무위원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선도가 국가적 차원에서 공인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1948년 9월 檀紀 사용이 결정되었으며 1949년에는 양력 10월 3일이 ‘開天節’로서 국경일화하였으며, 대한민국 교육이념으로 선도의 ‘홍익인간’ 이념이 채택되었다. 또한 대종교는 종단 제1호로 등록되었으며, 선도이념에 입각한 학원 설립의 노력으로 弘益大學, 國學大學, 檀國大學 등 다수의 학원이 설립되었다. 대종교 계통 정치가들에 의해 선도이념은 정치이념화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조소앙의 三均主義, 안재홍의 新民族主義, 안호상의 一民主義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가는 계속 이어지지 못하였다. 해방 이전부터라도 일제를 매개로 한 한국사회의 서구화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지만 해방 후에는 더욱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한국은 서구의 양대 사조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이 집중적으로 적용되면서,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양자의 대립점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 되었고 결국 6·25를 계기로 남북이 분단되었다.


 남북 분단 이후 한국사회에 적용된 냉전 체제 하에서 남·북한 할 것 없이 모두 선도의 민족주의 노선을 거부하였고 선도는 크게 쇠락하였다. 남한의 경우 정인보, 조소앙, 조완구, 안재홍, 명재세와 같은 대종교계 인사 및 신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납북이 선도 약화의 일차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외에도 냉전체제 하에서 민족주의적 정서가 금기시되었던 점도 선도 발전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남한에서 새롭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미국을 통하여 서양사상이나 종교(기독교)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어갔던 이유도 컸다.


 서구 근대의 합리주의적 학문방법론에 의거할 때 한국선도는 원시신앙에 불과해진다. 동양사상들 중에서 불교나 유교 등 후대에 전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상들은 그나마 동양사상 전통의 하나로 학문적으로 인정되며 때로는 서양사상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되기까지 하였던 반면 한국선도는 ‘원시 샤머니즘(巫敎, 무속)’, ‘민간신앙’, ‘민족종교’ 등의 애매한 이름으로 격하되었다. 더우기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선도는 단군이라는 우상 숭배의 전통하에서 나온 ‘이단종교’에 불과해진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한국선도는 상고 이래 한국사의 근간이자 한국적 정체성의 뿌리로서의 위상, 가깝게는 근대 항일독립운동의 주축으로서의 위상마저 심각하게 손상을 입을 정도가 되었다. 광복 직후에 나타난 선도 부활의 가능성들도 다시 사라져, 1962년 단기연호 대신 서기연호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개천절도 형식적 국경일로 외면되어갔다.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표방된 ‘홍익인간’의 이념 또한 형식적 구호로 전락되어갔다.


학문적으로도 신민족주의사학자들이 납북되면서 사학계내에서 실증사학이 우세해지고 식민사학에 대한 극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민족주의사학의 선도 연구가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였다. 물론 사학계에서와 달리 철학, 국문학, 종교학, 민속학 계열 등에서는 민족주의사학자들의 선도 연구를 계승, 발전시켜갔고 그 결과 선도사상이 새롭게 ‘한사상’으로 정립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도 연구가 사학계로 수렴되지는 못하였기에 국민들의 역사인식 속에서 선도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지 못하였던 점은 선도 약화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남북분단 이후 약화 일로에 있던 선도는 1970년대말·80년대초 무렵이 되면서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주어지게 되었다. 곧 이즈음 그간 침체 일변도에 놓여 있던 선도가 선도수련법을 중심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경제성장이라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한 한국인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찾게 되었고 이러한 선상에서 동양사상이나 동양 명상법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구화된 동양사상 및 명상법인 TM(초월 명상), 마인드콘트롤, 아바타, 각종 요가나 중국계 기공 등에 관심이 높았으며 선도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였다. 1970년대 선도수련단체로는 正覺道(1970년대 중반 國仙道로 개칭)가 유일하였다. 정각도는 1967년 靑山 고경민 仙士에서 비롯되었는데 1970년대말에 이르기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고유의 선도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말· 1980년대초 무렵부터 본격화되었다. 이즈음 ‘丹田呼吸’이나 ‘氣’를 표방한 많은 선도수련단체가 등장하게 되는데 우선 1970년대까지 저조하던 國仙道가 선도사상과 수련법 체계를 정비하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1985년에는 一指 李承憲(1950~현재) 仙士가 ‘단학’을 주창, 丹學仙院(2002년 단월드로 개칭)을 설립, 국선도와 함께 선도의 대표적인 양대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외에도 1986년 韓國丹學會 硏精院, 1991년 道華齋 石門呼吸, 1998년 樹仙齋를 위시하여 크고 작은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이 등장하였다.


 이처럼 1970년대말․1980년대초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한 선도수련단체들의 성장세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하게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기왕에 등장한 많은 선도수련단체들이 약세를 면치못하거나 경영난속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단학’ 계열만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는 이채로운 면모를 보였다. 단학은 국내외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가장 성공적으로 세를 확장하여 선도수련단체의 대표격으로서 위상을 부여받게 되었다. 현재 국내 300여개 외에 일본,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러시아, 중국 등 해외 여러나라에서 단센타를 운영하는 국·내외 최대 규모의 선도수련단체로서 선도의 대중화를 주도해오고 있다.


 이처럼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한국사회에 선도수련단체들이 집중적으로 등장, 선도수련법이 대중화하였음을 살펴 보았다. 이러하다면 근대 이래 등장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선도의 주축이 되고 있는 민족종교들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민족종교의 경우 단순히 종교적인 신앙 차원에 머문 경우라면 민족종교로 범주화해야겠지만 종교적 신앙 차원에 머물지 않고 선도수련(지감․조식․금촉수련)에 기반하여 ‘신인합일’, 또는 ‘천인합일’이라는 한국선도의 본령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경우는 비록 민족종교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선도수련단체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제시기 대종교 등에 이어 광복 이후에도 正一敎(1965년, ‘한얼교’로 개칭) 이하 많은 민족종교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들 중에서도 특히 1980년대 이후 한국선도의 변화된 흐름을 타고 선도수련법에 기반, 선도수련단체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경우로 仙佛敎(2000년)가 주목된다. 선불교는 198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선도수련단체인 ‘단학’ 계열에서 갈라져 나와 민족종교로 정립된 경우이기에 민족종교 중에서도 선도수련단체의 면모가 가장 강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북분단 이후 약화 일로에 있던 선도는 1970년대말·1980년대초에 이르러 다시 한번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즈음 먼저 서구화된 동양명상법이 소개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한국선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선도수련단체가 등장하였고 선도수련법의 보급을 통해 선도가 크게 대중화되었는데,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계열로 ‘단학’이 있다. 한국 근대의 선도가 대종교를 중심으로 민족종교의 형태를 취하였던 것과 달리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의 현대 선도는 선도수련법의 보급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흥한 특징이 있다. 근대 이후 선도가 민족종교의 방식으로 부활한 이래 선도는 민족정신, 또는 민족종교의 차원으로 이해되었을 뿐, 실상 선도의 본류라 할 수련법의 측면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수련법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으니, 한국선도의 본령이 제대로 발현되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