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선(유교, 불교, 선도)

한국선도 氣學의 현대화

고세천 2015. 11. 24. 12:57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앞서 1970년대말․1980년대초에 등장한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도 ‘단학’ 계열이 선도수련의 대중화를 주도하였음을 살펴 보았다. 단학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선도수련을 대중화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연구자의 경우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로 한국선도 전통을 현대화하였던 점을 들고자 한다. 한국선도 전통에서 바라볼 때 단학이 주목되는 이유는 물론 현대에 등장한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세를 확장하여 한국선도를 대표하는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선도전통의 현대화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단학이 선도전통을 현대화한 면모는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될 수 있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지적되어야 할 점으로 한국선도의 요체인 ‘仙道 氣學’을 현대화한 측면을 들 수 있다. 한국선도를 대표하는 핵심 경전인『천부경』·『삼일신고』를 위시하여 민간의 오랜 선도전통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질로서 ‘一(한, 하느님)’을 제시하고 이를 이루고 있는 세 차원(三元)으로 ‘天·地·人 三(삼신三)’을 제시한다. 이는 ‘一·三, 삼신하느님’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종래 다양한 해석법이 있어왔는데, 단학에서는 이를 氣學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차이를 보였다. 곧 천‧지‧인 삼원을 기에너지의 3대 요소로서 설명하였는데 ‘天氣=정보의식(정보·의식의 속성은 無·空이기 때문에 無·空으로 표현되기도 함), 地氣=질료·물질, 人氣=氣에너지’라는 해석이나 ‘天氣=빛光, 地氣=파동波, 人氣=소리音’로 설명하였다. 곧 ‘천기=정보의식=빛光, 지기=질료=파동波, 인기=氣에너지=소리音’으로 바라본 것으로 이는 기존의 해석법과 차별화되는 대단히 새로운 해석법이자 특히 선도 기학과 양자역학 등 물리학을 연동시키는 고리를 만든 이론으로 크게 주목된다.


 흔히 기라고 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에너지’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정보·의식’이나 ‘질료·물질’까지도 포함,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기로 바라본 것이니, 천·지·인 삼원은 모두 氣이며 단지 기의 형태만 다른 것으로 인식되었다. 곧 기는 ‘천기(정보의식, 빛光) ↔ 인기(氣에너지, 소리音) ↔ 지기(물질, 파동波)’의 순으로 밝고 가벼운 차원과 어둡고 무거운 차원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처럼 단학에서는 ‘一·三, 삼신하느님’의 실체를 기, 곧 ‘일기·삼기’로 바라보았는데, 그 효과적 의미 전달을 위해서는 주로 ‘홀로 스스로 존재하는 영원한 생명’, ‘천지기운’, ‘생명전자’ 등으로 표현하였다.


 단학에서는 ‘일기·삼기’의 속성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해석을 하였다. 종래 일기·삼기의 속성에 대해서는『삼일신고』의 ‘無善惡(·無淸濁·無厚薄)’이라는 고전적인 해석이 있어왔다. 단학에서는 ‘일기·삼기’가 무심한 기에너지일 뿐으로 치우침이 없다는 의미에서 이를 ‘無我, 無, 空, 0점’ 등으로도 해석하며 더 나아가서는 이것이 어떠한 私적인 치우침도 없는 ‘公(全體)’의 속성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공전을 우선한 자전, 공평을 우선한 평등, 구심력을 우선한 원심력’으로도 해석, 선도 기학의 심오한 깊이를 드러내었다.


 한국선도에 대한 단학의 기학적 접근법은 한국사 연구에도 큰 기폭제가 되었다. 먼저 ‘일기·삼기’적 인식은 한국 상고·고대사에서 널리 등장하는 ‘하늘(천)=밝음(빛)’ 신앙에 대한 획기적인 시각의 전환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곧 단학의 해석법에 의하면 ‘일·삼, 일기·삼기, 삼신하느님’은 형태상 ‘미세한 소리音와 파동波을 지닌 빛光’이니 이것이 한국 상고·고대사에 널리 등장하는 ‘하늘(천)=밝음(빛)’의 실체임을 밝힐 수 있었다.


 다음 한국의 구비설화나 민간전승, 또 선도서 등에 널리 등장하는 ‘마고(마고할미, 삼신할미, 마고여신)’도 선도 기학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우주의 근원적 생명력이자 법칙인 ‘일기·삼기’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종래 한국사속의 마고 전승들은 ‘하늘(천)=밝음(빛)’ 사상과 분리된 채 별개의 地母神(大母神) 신앙 정도로 인식되어왔는데 선도 기학의 관점을 통해 마고사상은 ‘하늘(천)=밝음(빛)’ 사상의 일종으로 수렴될 수 있었다. 또한 단학에서는 우주의 근원적 생명력인 ‘일기·삼기’가 北斗七星 근방에서 시작된다고 봄으로써 한국 상고 이래의 오랜 북두칠성(칠성) 신앙 역시 선도 기학의 일종으로 조명하였다. 


 이상에서 단학이 한국선도의 요체인 ‘일·삼, 삼신하느님’을 ‘일기·삼기’로 바라봄으로써 한국 상고·고대사나 민속·무속 등에 널리 등장하는 ‘하늘(天)=밝음(빛)’ 사상, 북두칠성사상, 마고사상 등 다기한 계통의 선도 전통을 하나로 종합할 수 있었음을 살펴 보았다. 단학의 ‘일기·삼기’의 관점은 한국 상고․고대사, 특히 사상·종교사 방면의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학에서는 ‘일기·삼기’를 대체로 아래와 같은 형태의 기표상으로 도상화하여 사용해오고 있다. 먼저 1기는 대체로 동심원(소용돌이)형 또는 약동하는 원형으로 표현되었다.(<자료1-1>) 다음 3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양인 삼태극형 또는 삼족오형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거나(<자료1-2-左·中>) 아니면 대종교의 천·지·인 표상인 원·방·각형을 가져와 약간의 변형을 주어 사용하기도 했다. 원·방·각형 위쪽에 배치된 약동하는 원형은 1기형 표상이고 그 아래에 배치된 원·방·각형은 3기형 표상이니 1기가 곧 3기라는 의미이다.(<자료1-2-右>) 또한 본질인 ‘일기·삼기’가 펼쳐지고 어우러져 현상의 물질세계가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5기형 표상과 9기형 표상도 있다. 중앙의 일기·삼기가 현상의 물질계를 이루는 4대 원소로 분화되는 과정을 표현한 5기형 표상(<자료1-3>), 현상의 물질계를 구성하는 4대 원소를 다시 각각의 律·呂(음·양의 한국선도적 표현)로 나눈 9기형 표상도 있다.(<자료1-4>)

< 자료1> ‘단학’의 기표상
1. 1氣 -동심원(소용돌이)형 또는 약동하는 원형   2. 3氣 -삼태극형, 삼족오형, 원‧방‧각형
       

3. 5氣            4. 9氣
        

 단학의 이 표상들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이들이 한국 상고 이래 각종 祭天儀器나 신성표상물로 널리 사용되어 오던 기표상의 전통을 정확하게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표상물의 원류는 동아시아 상고문화의 원류인 倍達古國 紅山文化의 祭天儀器나 司祭王의 權杖類 등이다. 배달고국의 기표상물들은 배달고국을 직접적으로 승계한 한반도‧만주 일대는 물론 중원 일대, 일본 열도 일대를 막론하고 동아시아 일원으로 널리 전파, 동아시아 신성 표상물의 원형이 되어오고 있다. 이중에서 한반도․만주 일대, 곧 한국사에 나타난 기표상물들을 아래에 제시하였는데, 이들을 ‘단학’ 기표상의 원류로 바라보게 된다.(<자료2>)

< 자료2> 배달고국 홍산문화 이래 한반도․만주 일대의 기표상
1. ‘1氣’ -동심원(소용돌이)형, 용형, 원형 및 원통형


2. ‘3氣’ -삼태극형

3. ‘5氣’
 
4. ‘9氣’


 이상에서 단학의 기표상들이 배달고국 홍산문화 이래 한반도․만주 일대로 전해진 기표상물 전통, 더 정확하게로는 한국선도의 기학 전통을 정확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삼국시대 이후 한국선도의 침체 과정에서 한국선도 기학의 원의미가 잊혀지고 민속·무속 등 다양한 형태로의 곡해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오랜 시대의 격간을 뛰어넘어 선도 기학의 원형이 회복된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현대 단학에 이르러 한국선도 기학이 새롭게 되살아나고 정립됨으로써 한국선도는 새로운 발전의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